근황

1. 잠시(?) 짬을 내어 에바 TV판을 훑었다. 주변인들에게 이제 난 빼도박도 못하는 오덕이 되어버렸다.

'잔혹한 천사의 모습으로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2. 어젯밤 아이팟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덕분에 1년 반만에 암흑기가 도래했다. 머리가 멍해져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했다. 왜 이런 시기에...

3. 주말에 공자평전과 노자평전을 득템했다. 동도고서에서 맹자평전과 장자평전을 구한 뒤로 찾아 헤매도 헛수고였는데, 뜻밖에 등잔 밑에서 발견한 모양새. 덕분에 진용이 그럴듯하게 갖추어졌지만, 아직 네권 중 끝까지 읽은 게 없다는 건 처참.

4. 기타의 프렛이 심상치가 않다. 에보니를 관리하지 않으면 터져버린다는 걸 너무 쉬이 생각한 것 같다. 아까워!

5. 1월은 시작과 함께 휘몰아치듯 흘러간다. 월월월월월월일의 느낌이랄까...


by 현재시제 | 2010/01/15 22:00 | 雜文 | 트랙백 | 덧글(3)

도덕적 해이의 양면성에 대해

자영업자가 문 닫는 속도로 볼 때 회수의문 예상해야지요.

먼저 김대기 변호사님(이하 변호사님, 명백히 직함까지 공개하신 분께 '글쓴분'이란 호칭을 쓰는 건 좀 어색하여...)은 자영업자로 마이크로크래딧의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자영업자들의 파산가능성을 차치하는 한에서 1차적으로 그들에게 금융서비스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그 자체로 정책의 효용성을 갖는다고 본다. 물론 그들의 파산가능성이 높은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도덕적 해이'는 이름과 달리 도덕과는 무관하다고 보는 게 좋을 듯 하다. 이는 정보비대칭 상황에서 대리인이 의뢰인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이니 말이다(이 때문에 도덕적 해이의 별칭은 '주인-대리인 문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파산한 개인에게 '도덕적 해이' 여부를 묻는다는 것은 지극히 우문이다.

이어서 차입을 변호사님은 '노예적 속박'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건 좀 비약인 듯 하다. 차입 자체는 중립적이다. 물론 복지정책을 유인설계 일변도로 나간다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를 떠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라는 복지정책의 기본원리를 거스르는 것이기에 나 역시 그에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의 수준이 아닌, 개인의 경제적 재활의 차원이라면 조금 달리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직접지원'이라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시장기구를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배운 경제원리는 자신이 지는 추가적 부담에 따라 추가적으로 편익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직접지원'이라는 것은 상환이라는 '조건'이 없으니 시장원리가 작동할 여지가 없다. 이에 반해 대출의 경우 신용이 전달된 뒤 이를 '떼먹거나, 낭비한다면' 당연히 더 이상 다른 이들에 대한 추가적인 대출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건희 회장 건은 좀 벗어나는 이야기이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그쪽을 이쪽이랑 연계하는데는 별 관심없으니 말입니다.)

예금보험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변호사님의 주장에는 찬성이다. 하지만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용인하고 있으니, 저소득층의 '도덕적 해이'도 용인하라는 건 좀 이상하다. 평등의 원칙이 위법성의 조각사유가 될 리 없으니 말이다.

더불어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파산하게 되는 개인들이 투기용 주택을 구입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그들에 대한 개인파산제도에도 분명 '도덕적 해이'의 위험성은 존재한다. 지난 번 글에서 언급했던 총선에서의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거둔 승리와 '부동산불패'라는 단어가 이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개인파산제도 같은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적어도 그것이 '예외적인' 상황에서라면 말이다.

by 현재시제 | 2009/12/30 16:37 | 濟界 | 트랙백(1) | 덧글(3)

'금융'의 문제

아, 참 은행 (제1금융권)이 취급하는 금융은 부족일 수 있지요

이쪽과 저쪽의 용어에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글을 쓰신 분은 '금융과잉'을 지적하시며, '관치'와 '부패'를 언급하시는 것으로 보아 일단 글쓰신 분의 '금융'은 내가 정의한 그것과 다르다고 보여진다. 거두절미하고 글쓰신 분이 정의하신 '금융'이란 '금융권의 경제권력'에 다름 아니다. 사실 GM과 Chapter 11에 대한 글쓴 분의 비판은 올 한해 언론에서 폴 크루그먼이나 조셉 스티글리츠 등에 의해 언급되었던 것과 거의 유사해 보이고, 이들이 비판했던 지점은 '금융' 그 자체였다기 보다는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였다는 점에서 글쓰신 분의 단어선택은 다소 과격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글쓴 분도 '자본주의의 운용방식'은 문제삼되, '자본주의 그 자체'를 문제삼지 않는다는 전제가 성립가능하다면 말이다.

개인파산제도의 의의는 잘 알겠는데, 과연 그 기간의 연장이 가지는 파장이 글쓴 분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그다지 큰지는 (내가 과문하고 경제적인 위협에 시달리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잘 모르겠다. 더불어 주택가격거품이 미치는 영향력이 실물경제를 괴멸시킬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의 속성이 '약탈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것은 내가 이전에 썼던 글에서 밝혔듯 개개인의 행태가 동일할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자명하다. 

자산거품에 있어서 가격을 올리는 기제인 '자기실현적 기대'는 우리들 내부에 있다. 돌려 말해 금융권이 탐욕적인 것처럼 우리들 자신도 탐욕적인 것이다(좀 다른 곳으로 새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사실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들의 욕심탓이 아니던가?).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주택담보대출이라는 제도가 '서민들의 내집마련' 같은 순수한 의도로만 작용할 것이라고 단언하지 못하겠다.

중소기업인에 대한 글쓴 분의 견해에는 어느 정도 찬성한다. 하지만 '마이크로 크래딧'에 대한 견해는 좀 순진해 보인다. 일단 직접지원을 하는 금액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이자율의 차액을 지급하면 된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급비율에 대한 것일 뿐 궁극적인 금액은 가계마다 달라져야 한다는 점에서 직접지원금액 산정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앞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렇게 지원된 금액으로 과연 사람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만약 '마이크로 크래딧'을 한다면 그것은 필수적으로 노동을 수반하지만, 직접지원은 그렇지 않다. 즉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고, 따라서 그들이 이런 지원액으로 '자활'을 하는지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

by 현재시제 | 2009/12/29 20:07 | 濟界 | 트랙백(1) | 덧글(0)

금융이 정말 과잉이라고 생각하나?

문제는 금융의 과잉이다, 부족이 아니다

현재 FRB의 의장을 맡고, 차기 의장까지 예약한 Ben Bernanke는 금융이론을 통해 경제학계의 스타가 되었다.


그의 이론이 무엇이길래 주목을 받았을까?


그와 그의 동료들은 금융시장에서의 '신용(대출)'규모에 주목했고, 불황이 찾아오는 경우 상당한 신용규모의 위축을 경험한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이유인즉슨 불황이 시작되면 은행들은 지급불능으로 자신들이 파산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의 대차대조표 상에서 부채에 해당하는 대출을 줄이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경제이론에 따른다면 그들에게 높은 수익률(이자율)을 제시하는 경우 대출을 해주는 것이 맞겠지만, 불황인 경우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감내하겠다는 이들에 대한 대출이 불량채무자에 대한 '역선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까닭에 이마저도 시원치 않을 수 있게 된다.


원글을 쓰신 분은 '금융'이라는 것을 공공의 적으로, '금융위원회'를 위시한 경제부문 기술관료와 주류경제학을 '악의 축' 이나 음모론에 등장하는 '그들'로 생각하는 듯 하다. 물론 나 역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국민에 대한 사명감만으로 충만한 애국적인 공직자'들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위의 이야기같은 것을 내놓는 순간 공무원이든, 은행원이든, 기업가든, 일반시민이든 다 그놈이 그놈, 즉 좋게 말해 합리적 인간이고 나쁘게 말해 지 밥그릇 챙기기 바쁜 놈이라는 이야기가 되니 당연하겠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금융기업은 사실 좋은 놈들도 나쁜 놈들도 아니다. 적어도 내 자신이 가진 소박한 도덕률에 비추어 볼 때 남들과 똑같이 (자기 밥그릇만 챙기며) 사는 사람들은 이타적이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행동을 정반대로 변경한다고 해서 생존을 보장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회생' 제도는 무엇이길래 글을 쓴 분은 개인회생 변제기간 단축에 반대하는 금융권과 금융위원회를 그렇게 비난한 것일까?


네이버 백과사전은 개인회생제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재조정해 파산을 구제하는 개인 법정관리이다. 채무 범위는 무담보채권의 경우에는 5억 원, 담보부채권의 경우에는 10억 원 이하이다. 변제 기간은 최하 3년, 최장 5년이며, 이 기간에 일정한 금액을 변제하면 나머지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 개인회생제도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어느 정도의 변제능력을 갖춘 이에 한해 법원이 채권자를 불러 일정액을 줄테니 퉁치도록 채무를 줄여준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금융권에서는 지극히 당연히 반대할만한 제도이다.


물론 그런 금융권의 반대가 사회일반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조금 다른 문제이다. 분명 서류상의 오류나 기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채무를 떠안게 되는 사람이 존재할 수는 있다. 적어도 그들에 대한 구제는 필요하다는데에 반대할만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거기서 끝인가? '개인회생'이라는 제도가 아니면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할 길이 없는가? 아니 더 나아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는 방식이 '직접지원'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 있는가?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애나 질환등으로 노동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닌, 단순히 노동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있어 '직접지원'은 오히려 그들의 무기력증을 강화할 여지가 더 강하다. 단순히 '돈'이면 된다는 생각이 더 위험하지 않나? (예컨대 알콜중독자에게 현금지원을 하는 경우 그는 그것으로 술을 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능력 상실이 아닌) 노동 의욕을 잃은 이들에겐 오히려 '직접지원'보다는 '금융지원'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당연히도 '지원'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이상, 금융지원은 예대마진을 통해 영업을 하는 일반금융이 아닌 '경제능력 회복'에 촛점을 둔 저리의 대출제도같은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마이크로 크래딧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문제는 '금융의 과잉'이 아니다. 오히려 '결핍'이 문제될 뿐이다(글쓰신 분은 이 부분에서 97년 외환위기, 08년 환율문제, 서브프라임을 언급하셨는데 사실 이중에 그 원인을 온전히 금융으로 돌릴만한 건 서브프라임 뿐이다. 97년 외환위기의 경우 단순히 금융만이 문제라고 보기엔 너무 복잡하고, 08년 문제는 정책당국의 혼선과 국제사정이 맞물린 터라 '무엇이 원인이다.' 확신한다는 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주택담보대출은 개인회생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일까?

섣부른 예측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집'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 때문은 아닐까 싶다.

부동산이라는 자산은 다른 자산과 달리 공급이 한정되어 있고, 그에 따라 투기를 통한 재산축적이 상당히 용이하다.

특히나 대한민국에서 주택의 공급은 인구밀도와 도시의 밀집 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럴 개연성이 더 높다.

따라서 부채의 일부탕감을 내포하는 개인회생제도가 주택담보대출과 연계되면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관료들의 (좋은 의미의) 특기인 법률 개정과 규제를 통해 조정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기에 (원글을 쓰신 분만큼 격분하진 않더라도) 조금 아쉬워 보이기는 한다.


마지막으로 사족이지만 법 개정 작업이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내 나름대로 이유를 따져 보았다.

그것은 'iron triangle'같은 원글을 쓰신 분이 의도하셨던 것과 유사한 권력의 복합체가 내놓은 방어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앨리트집단으로서 관료들은 자신들이 분석했던 데이터들은 무시당한 채 '논의'라는 이름으로 이상하게 흘러간 주제가 '이전투구'의 모양새를 띄는 것을 회피하고 싶었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관료들의 생각은 위에 언급한 'iron triangle'과 유사한 맥락이 되는지라 조금 위험한 것이기는 하다.


그런데 mob이 되어버린 대중들에 대한 견제를 유지하면서 정상적인 논의나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과연 용이한가의 문제를 생각해볼 때 조금 씁쓸해진다. 사실 그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by 현재시제 | 2009/12/29 11:03 | 濟界 | 트랙백(2) | 덧글(2)

크리스마스 카드/엽서도 DIY시대

매킨토시의 약점 중 하나는 오피스 프로그램이 구리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i-works에 내장된 pages가 있지만, 윈도우처럼 편집시 폰트의 볼드체를 옵션으로 선택하는 대신 별도의 볼드 글씨체가 필요한데다, 단축키로 날아다니는 OS X에 비해 왠지 편집기능이 부실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서류같은 딱딱한 문서는 왠지 그 느낌이 영 살아나질 않는데, 역으로 말해 가벼운 느낌의 문서 작성은 상대적으로 용이할지도?

먼저 웹에서 이미지를 다운로드받고 gimp를 이용해 그림들을 오려내 저장한다.


(윗그림)


(밑그림)


그런 다음 pages에 오린 그림을 붙이고 말풍선 달아 글을 쓸 밑줄을 그어주면...


완성!!


덧 : gimp는 포토샵과 비슷한 그림파일을 편집할 수 있는 무료 어플리케이션이다. 배경에 눈을 그려넣고 싶었지만 쉽지 않아 포기... 아무리 잉여력을 발휘해도 거기까지 가면 돌아오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by 현재시제 | 2009/12/22 20:39 | 雜文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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