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래도 대통령을 믿고 싶다.

'믿는다'가 아니다. '믿고 싶다'다. 촛불 문화제 현장 한번 제대로 가보지 않은 이로써 말을 꺼내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운을 떼보자.


대통령의 불행은 그 자신의 불행으로 끝일까? 그렇지 않다. 대통령이 불행해져서 생채기를 입는다면 국민은 어떤식으로든 피해를 입는다. 하다 못해 지금 이 상황에서 재협상을 통해 그동안 쇠고기와 관련된 '뻘짓'을 종결한다고 해도 상당수 (아마도 대선 당시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신'이라는 흉터가 남을 것이다.

그런데 '하야'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진다면? 일단 임기를 시작한지 반년도 못된 대통령이 자리를 내놓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하다. 잘 알다시피 민주주의라는 종교는 야만적이기 이를데 없는지라 제단에 피 몇바가지를 부어줘야 교리(헌법) 한구절이 바뀔 수 있는 구조이다. 하물며 멀쩡히 대통령이 된 (선거를 통해 직위를 얻게 된) 이가 자리를 내놓는 것이라면 어떻겠나?

4.19 혁명은 이승만 정부의 고위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명백히 잘못된 행동을 했고,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시민들 대부분이 동참했다. 지금은 욕을 먹고 있는 조선, 동아 등의 일간지 또한 지금처럼 패악질을 하진 않았다(물론 '서울신문'이라는 관영매체는 호되게 당했다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는 '피'가 있었다. 현재의 전경무리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우스울 정도의 진압이 있었고 많은 시민들이 죽어갔으며, 이로 인해 시민의 분노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국지전이었다고 할 수 있는 5.18 항쟁은 잠시 접어두자. 무엇보다 그것이 '성공한 혁명'은 아니지 않은가? 87년 6월의 씨앗을 뿌린 것은 박종철이었고, 그 꽃망울을 트이게 한 것은 이한열이었다. 그들의 죽음과 이에 준하는 여러 사람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절반의 성공'인 9차 헌법과 6공화국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2008년 6월의 우리는? 전문적인 '시위꾼'들이 아닌 동네 형들, 동생, 언니들이 되먹잖은 물대포와 발길질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이제 제단에는 그저 핏기가 조금 뭍었을 뿐이다. 그곳이 피로 넘쳐 흐를 때 '민주주의의 신'은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로 강림하실게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할까? 언제나 어디서나 그분 '민주주의의 신'은 우리에게 완전한 역사를 보이지 않으신다. 신은 당신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교활한 협잡꾼과 악랄한 무리들을 당신의 뒤에 숨겨두신다. 아마도 신께서도 완벽하시지 않은 모양이다. 더불어 제단 앞에 모인 사람들의 신앙심도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아직 상당수가 '신의 역사'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일게다(누구를 지적할 필요없이 당장 나부터도).

그래서 나는 대통령을 믿고 싶다. 제발 몽둥이는 거두고 시민들 앞에 나서길. '외교적 전략'과 '진정성'을 구분하고, '경험' 대신 '신뢰'를 믿어보길. 5년 동안 자신이 대표하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이 있기에 나의 삶은 비참하다'는 말의 참담함을 깨닫길.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현재시제 | 2008/06/04 19:42 | 三枚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glammy.egloos.com/tb/191993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