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23일
가슴사이즈 공개 / 마광수 교수님 이야기
1. 요즘 이글루스 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가슴사이즈'이다. 이 문제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 한데, 난 일단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잘 알질 못하겠다. 생리와 관련된 글이 올라오는 경우에는 그다지 '항가항가'하지 않으면서도 그와 동일하게 일반적인 문제인 가슴사이즈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왜 그리들 '항가항가' 하는지...
'동가홍상'이란 말이 있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고 가슴사이즈와 속옷궁합으로 인해 본의 아닌 고통을 받는 여성들의 일상적인 고민을 비일상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글쓴이가 의도하지 않았던 반응'이라는 점에서 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일부의 의견처럼 그러한 글을 쓴 경우에도 (민법상 성립하는 불법행위와는 다른 개념으로) 일정 정도의 책임, 그러니까 1차적 자료를 제공했다는 의미의 책임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물론 실질적이면서도 종국적인 책임은 생면부지인 분의 블로그에 '의미불명'을 가장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 있을 것이다. 뭐 '지나가는'분들은 그야말로 대책없는 쪽이고...
2. 간만에 싸이월드를 갔더니 마광수 교수님 이야기가 올라왔다. '즐거운 사라'와 복직투쟁 기타 등등의 수많은 사건들을 거치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약해지신 상태라고 한다. 문제는 거기에 올라오는 댓글들. 개콘의 박성광 캐릭터부터 시작해서 '야설작가' 등등의 교수님 본인은 가장 피하고 싶지만, 기자들은 가장 기대했을 듯한 글들이 쏟아져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다. 다소 거칠게 이해한 것이지만, 마교수님에게 있어서 (원래적 의미가 아닌 인간에게 있어서 변형된) 성이란 '사적 자치원리에 기반한 사생활의 영역에서 암묵적 계약을 통해 이루어지는 쾌락의 교환행위' 정도가 될 것이다. 내 짧은 지식에 의하면 사법상 영역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의는 불법을 조각한다'라는 법원칙이 통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교수님은 그 영역에서의 행위에 대한 일련의 문학적 실험을 단행한 것이고, 이런 영역에서의 실험이라고 한다면 그 적실성은 법원을 판단을 거치기 전에 전문가 집단인 문학계의 비평을 거치고 이러한 비평에 기반해 법원이 최종적 결정을 받아들이는 (이른바 법률요건에 내재한' 법적으로 불명확한 개념(unbestimmter rechtsbegriff)'에 대한 심사과정) 판단구조로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련판례전문을 읽어보지 않아서 섣부른 판단은 지양해야 하지만, 적어도 지인들의 증언이나 TV에 등장해서 당신이 하신 인터뷰 등에 기반한다면 마광수 교수의 경우 (적어도 당시의 상황이 규범적 포퓰리즘이 존재했던) 권위주의 정권하의 평가였다는 점에서 자신의 실험과 관련해 위에 이야기한 것과 같은 구조의 평가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결과는 역으로 문학계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다시 언론과 여론이 그것을 재생산 / 증식하는 구조로 당신을 옥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개인적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사적 공간에서 인간의 기본권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합의를 한 상대방과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특정한 성적 행위를 한다고 하면 법은 이를 제약할 수 없고, 제약해서도 안된다. 만일 그와 관련한 저작물이 유포되는 경우 (등급제 등을 통해 제한하는 경우라고 한다면) 이를 단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작자 자신에게 불이익을 가해서는 안되며, 특히 저작자 본인이 속한 전문가 집단의 경우라고 한다면 (저작행위 자체를 위해서) 이에 대한 변론을 해야 한다.
원래가 저속하고 난잡한 인간인지라 이런 부분에 민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합리적 이유없는 이중기준은 이해할 수 없다. 적절하지는 않지만 문득 '김본좌 사건' 당시 돌던 농담이 생각난다.
"너희들 중에 하드에 야동한편 없는자 나에게 돌을 던지라"
'동가홍상'이란 말이 있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고 가슴사이즈와 속옷궁합으로 인해 본의 아닌 고통을 받는 여성들의 일상적인 고민을 비일상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글쓴이가 의도하지 않았던 반응'이라는 점에서 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일부의 의견처럼 그러한 글을 쓴 경우에도 (민법상 성립하는 불법행위와는 다른 개념으로) 일정 정도의 책임, 그러니까 1차적 자료를 제공했다는 의미의 책임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물론 실질적이면서도 종국적인 책임은 생면부지인 분의 블로그에 '의미불명'을 가장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 있을 것이다. 뭐 '지나가는'분들은 그야말로 대책없는 쪽이고...
2. 간만에 싸이월드를 갔더니 마광수 교수님 이야기가 올라왔다. '즐거운 사라'와 복직투쟁 기타 등등의 수많은 사건들을 거치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약해지신 상태라고 한다. 문제는 거기에 올라오는 댓글들. 개콘의 박성광 캐릭터부터 시작해서 '야설작가' 등등의 교수님 본인은 가장 피하고 싶지만, 기자들은 가장 기대했을 듯한 글들이 쏟아져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다. 다소 거칠게 이해한 것이지만, 마교수님에게 있어서 (원래적 의미가 아닌 인간에게 있어서 변형된) 성이란 '사적 자치원리에 기반한 사생활의 영역에서 암묵적 계약을 통해 이루어지는 쾌락의 교환행위' 정도가 될 것이다. 내 짧은 지식에 의하면 사법상 영역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의는 불법을 조각한다'라는 법원칙이 통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교수님은 그 영역에서의 행위에 대한 일련의 문학적 실험을 단행한 것이고, 이런 영역에서의 실험이라고 한다면 그 적실성은 법원을 판단을 거치기 전에 전문가 집단인 문학계의 비평을 거치고 이러한 비평에 기반해 법원이 최종적 결정을 받아들이는 (이른바 법률요건에 내재한' 법적으로 불명확한 개념(unbestimmter rechtsbegriff)'에 대한 심사과정) 판단구조로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련판례전문을 읽어보지 않아서 섣부른 판단은 지양해야 하지만, 적어도 지인들의 증언이나 TV에 등장해서 당신이 하신 인터뷰 등에 기반한다면 마광수 교수의 경우 (적어도 당시의 상황이 규범적 포퓰리즘이 존재했던) 권위주의 정권하의 평가였다는 점에서 자신의 실험과 관련해 위에 이야기한 것과 같은 구조의 평가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결과는 역으로 문학계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다시 언론과 여론이 그것을 재생산 / 증식하는 구조로 당신을 옥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개인적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사적 공간에서 인간의 기본권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합의를 한 상대방과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특정한 성적 행위를 한다고 하면 법은 이를 제약할 수 없고, 제약해서도 안된다. 만일 그와 관련한 저작물이 유포되는 경우 (등급제 등을 통해 제한하는 경우라고 한다면) 이를 단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작자 자신에게 불이익을 가해서는 안되며, 특히 저작자 본인이 속한 전문가 집단의 경우라고 한다면 (저작행위 자체를 위해서) 이에 대한 변론을 해야 한다.
원래가 저속하고 난잡한 인간인지라 이런 부분에 민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합리적 이유없는 이중기준은 이해할 수 없다. 적절하지는 않지만 문득 '김본좌 사건' 당시 돌던 농담이 생각난다.
"너희들 중에 하드에 야동한편 없는자 나에게 돌을 던지라"
# by | 2008/09/23 23:28 | 三枚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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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마교수의 글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너무나 지나친 것만은 사실이라서 몇자 적어 봅니다...^^
근데 이곳 블로그의 제목 만큼이나 독특한 주제들을 다루는 군요...^^ 자주 오도록 하죠...ㅎㅎ
뭔가, 내놓아야 할 텐데, 국민 대부분이 야동 보고 인터넷에는 우ㅔㄴ만한 나체 나오고 , 마누라보다는 색시하다... 이게 문제인가?
이런 포스팅이 의미가 있습니까? 이미 우리는 그런 시절 넘어 갔는데...
님주변의 '우리'는 그런 시절을 넘겼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그들은 그런 시절 속을 살고 있으니까요.
_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본다(다만, 피고인이 제출한 상고이유보충서는 상고이유서제출기간이 경과된 이후에 제출된 것이므로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 본다).
_ 1. 형법 제243조의 음화등의반포등죄 및 같은 법 제244조의 음화등의제조등죄에 규정한 음란한 문서라 함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것이고, 문서의 음란성의 판단에 있어서는 당해 문서의 성에 관한 노골적이고 상세한 묘사·서술의 정도와 그 수법, 묘사·서술이 문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문서에 표현된 사상 등과 묘사·서술과의 관련성, 문서의 구성이나 전개 또는 예술성·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의 완화의 정도, 이들의 관점으로부터 당해 문서를 전체로서 보았을 때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는 것으로 인정되느냐의 여부 등의 여러 점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들의 사정을 종합하여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그것이 공연히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시키고 또한 보통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당원 1970.10.3.선고 70도1879 판결; 1975.12.9.선고 74도976 판결; 1995.2.10.선고 94도2266 판결 참조).
_ 원심이 채용한 증거들을 기록과 대조하여 검토하여 보면, 이 사건 소설 “즐거운 사라"는 미대생인 여주인공 “사라"가 성에 대한 학습요구의 실천이라는 이름 아래 벌이는 자유분방하고 괴벽스러운 섹스행각 묘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성희의 대상도 미술학원 선생, 처음 만난 유흥가 손님, 여중 동창생 및 그의 기둥서방, 친구의 약혼자, 동료 대학생 및 대학교수 등으로 여러 유형의 남녀를 포괄하고 있고, 그 성애의 장면도 자학적인 자위행위에서부터 동성연애, 그룹섹스, 구강성교, 항문성교, 카섹스, 비디오섹스 등 아주 다양하며, 그 묘사방법도 매우 적나라하고 장황하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또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위 소설은 위와 같이 때와 장소, 상대방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성행위를 선정적 필치로 노골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다가 나아가 그러한 묘사 부분이 양적, 질적으로 문서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이나 전개에 있어서도 문예성,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 완화의 정도가 별로 크지 아니하여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는 것으로 밖에 인정되지 아니하는바, 위와 같은 여러 점을 종합하여 고찰하여 볼 때 이 사건 소설은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음란한 문서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_ 소론과 같이 오늘날 각종 영상 및 활자매체 등을 통하여 성적 표현이 대담, 솔직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다양한 성표현물이 방임되어 오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라고 하여도 정상적인 성적 정서와 선량한 사회풍속을 침해하고 타락시키는 정도의 음란물까지 허용될 수는 없는 것이어서 그 한계는 분명하게 그어져야 하고 오늘날 개방된 추세에 비추어 보아도 이 사건 소설은 그 한계를 벗어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기록에 의하면 제1심 제2회 공판기일에서 검사작성의 신태웅, 김남규에 대한 각 진술조서에 대하여 피고인이 증거로 함에 동의를 하였음이 명백하므로 이는 증거능력이 있다고 할 것이니 이를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삼은 원심의 조치에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원심이 이 사건 소설을 음란문서라고 인정한 데에 소론과 같은 심리미진이나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 자유심증주의의 남용, 이유불비, 이유모순,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_ 2. 그리고 우리 나라 헌법은 그 제22조 제1항에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그 제21조 제1항에 “모든 국민은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가진다.“고 각 규정하고 있어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문학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으나, 한편 그 제21조 제4항에 “언론·출판은...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 제37조 제2항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각 규정하고 있으므로 문학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도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에 따라 우리 형법에서는 건전한 성적 풍속 내지 성도덕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제243조에서 음란한 문서를 판매한 자를, 그리고 그 제244조에서 음란한 문서를 제조한 자를 각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문학작품이라고 하여 무한정의 표현의 자유를 누려 어떠한 성적 표현도 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고 그것이 건전한 성적 풍속이나 성도덕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위 각 형법규정에 의하여 이를 처벌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_ 따라서 이와 다른 견해에서 원심판결에 표현의 자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는 소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
_ 3. 일반적으로 법규는 그 규정의 문언에 표현력의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질상 어느 정도의 추상성을 가지는 것은 불가피하고, 형법 제243조, 제244조에서 규정하는 “음란"은 평가적, 정서적 판단을 요하는 규범적 구성요건 요소이고, “음란"이란 개념이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풀이되고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이를 불명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_ 따라서 형법 제243조와 제244조의 규정 자체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심이 위와 같은 음란의 개념을 적용하여 이 사건 소설을 음란문서라고 판단하였다고 하여 원심판결에 소론과 같이 위 법조 소정의 음란문서의 해석을 잘못하여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기준을 가지고 판단한 위법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논지는 모두 이유가 없다.
_ 4. 이에 상고를 기각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역시 제 예상대로 음란물 여부의 판단은 판사영감님들의 발기여부는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드네요. 물론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판단은 2차적인 것으로 돌린다 하더라도, 적어도 문학계에서 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도 있을 듯 하구요. 여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