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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한 정리 및 경제 잡담 몇가지

1. 우리들 중 이른바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라고 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명제는 '모든 문제는 시장에서 해결가능하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 좁게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만같은 이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미디어로 받아들이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과연 소위 '시카고학파'들만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신자유주의자인가? 대답은 당연히 No이다. 거기엔 (교과서로 유명한) 맨큐나 (연준위의장인) 버냉키 등 공화당계열의 케인즈학파 경제학자들과 넓게는 민주당 지지자인 서머스, 폴 볼커 심지어 작년 노벨상 수상자인 크루그만을 포함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이 사실상 현재의 주류경제학을 통칭하는 단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최초의 케인즈가 설파했던 일반이론과 달리 현재의 이른바 '새케인즈학파'라는 집단은 프리드만과 (루카스나 프레스캇같은) 그의 후학들이 세운 많은 개념들 요컨대 장기균형에서의 화폐의 중립성, 합리적 기대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남은 케인즈의 흔적은 고작해야 '금융정책이라는 게 언제나 무력하지는 않다.' 정도이다. 재정정책은 금번과 같은 위기가 아니라면 소비나 투자같은 민간부문을 위축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극도로 제한적으로만 허용될 여지를 남겼을 뿐이고, 장기추세치(완전고용상태)에서의 이탈이라는 것이 과연 케인즈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일반적인 경우'인지에 대해서도 확답을 하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공화당 케인지안과 민주당 케인지안 중 온건한 무리들, 즉 그레고리 맨큐, 벤 버냉키, 존 테일러, 올리비에 블랑샤, 로렌스 서머스, 폴 볼커 등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강성 중의 강성으로 꼽힐 것 같은 폴 크루그만이 '신자유주의자'라고 불려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바로 '자유무역'과 관련된 논쟁 때문이다. 자유무역과 관련된 논쟁에서 주요한 부분만 이야기한다면 시장에서의 거래가 과연 사회일반의 후생(혹은 효용)을 더 키울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에 대해 크루그만은 적극 찬성을 표시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 그 자신이 과거 비교우위를 통한 산업간 무역을 규모수익체증이 존재하는 경우의 산업내 무역으로 확장해 자유무역의 우위를 입증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클린턴 시절의 '전략적 무역정책' 같은 그림을 깨고자 했었고, 스티글리츠나 장하준 같은 이들의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간의 무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비판했었다. 이것이 그가 국내적 문제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온건주의자들에 비해 정부개입에 훨씬 적극적이고, 정치적으로 사민주의에 가까운 liberal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확장된 의미의) '신자유주의자'라고 불릴만한 이유라 할 것이다(이런 그의 성향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다소 비열해 보이기 까지 한다'고 논평했다).

2. 현 정부의 감세정책, 과연 정체가 무엇인가?

80년대를 풍미했던 이른바 '부두교 경제학'이라 불리는 '공급경제학'.
이 녀석은 정체가 무엇인가? 과연 그들이 이야기하는 감세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케인즈학파적인 감세와 무엇이 다른가?

일단 이름에 주목해보자. 감세를 주장하고 있음에도 그 효과가 '공급측'에 미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케인즈학파가 이야기하는 정책인 감세를 그들의 카드로 만지작거린 것일까?

케인즈는 '일반이론'에 소비란 가처분소득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 바 있다. 가처분 소득이란 총소득에서 세금납부액을 뺀 것이다. 또한 케인즈는 경제일반에 총수요가 부족하면 정부는 민간이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의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는 GDP라 불리는 총생산(혹은 총소득)이 소비와 투자, 정부지출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정부지출이 늘게 된다면 경제일반의 소득이 늘어나니 소비를 늘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처분소득을 높이는 방법에는 정부지출을 늘려 총소득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세금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여기에서 케인즈학파의 감세정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급경제학은 어떤가? 일반적으로 거시경제학적으로 총수요를 정의한다면 소비와 투자 그리고 정부지출의 합으로 표현된다. 이는 누출로 계산되는 것이다. 즉, 가계는 소비를 하고, 기업은 투자를 하며, 정부는 지출(복지지출이라기 보다는 기간시설 건설, 국방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을 한다. 이를 누입으로 바꾸어보자. 기업은 민간소비를, 가계는 투자를 위한 저축을, 정부는 세금징수를 담당한다. 누입과 누출은 동일하기 때문에 간단한 식으로 바꾼다면 소비(C)+투자(I)+정부지출(G)=소비(C)+저축(S)+세입(T)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을 간단히 조작하면 투자(I)=저축(S)=민간저축(Y-C-T)+정부저축(T-G)가 된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일반적으로 '공급'이라고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세가지는 노동과 자본 그리고 기술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기업의 투자는 생산설비를 만들어내거나 연구개발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할 때 정부부문이 늘게 되면, 다른 말로 세금이나 정부지출이 커지면 저축이 줄어 투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세금을 줄임으로써, 민간부문의 비중을 더욱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서 등장했던 것이 이른바 '래퍼 곡선'이라는 것인데,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 후보로 있던 시절 경제학자 아서 래퍼가 식당 냅킨에 그려서 보여줌으로 세상에 등장한 래퍼 곡선이 담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금(정확히는 세율)이 증가함으로 인해 최초에는 세수가 증가하지만, 차츰 세금이 늘어날수록 (노동소득을 세금으로 내느니 차라리 놀아버리겠다는) 민간의 노동과 여가선택간 왜곡을 유발해 생산을 줄이고 그로 인해 세수를 줄이게 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세금의 수준이 매우 높다면 세금을 줄이는 것이 오히려 세수를 늘이는 길이 될 수도 있고, 당시(80년대) 미국의 세금이 매우 높으니 감세를 하면(세율을 낮추면) 세수는 늘어날 것이다.

이렇듯 케인즈학파의 감세가 총수요 측면이었다면, 공급경제학의 감세는 총공급 측면이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케인즈학파는 세금의 액수 자체에 집중하고 단기적 경기부양을 목표로 했다면, 공급경제학에서는 세율을 중심으로 장기적 경제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그렇다면 원점으로 돌아오자. 현 정부의 감세는 그 정체가 무엇인가?

정부 출범 초기 '747'이라는 공약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거의 확실히 공급경제학을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금융위기여파로 인한 지출(정부수입감소)이 겹치며 그 정체가 모호해져 버렸다. 물론 적어도 현재의 감세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세율 인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공급측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강만수가 '올드보이'로 불렸던 까닭은?

만수횽을 까는 건 하도 많이 해서 입이 아프지만 가장 먼저 그를 (시대착오적 측면에서) '올드보이'라고 당당히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의 환율정책 때문이다.

언젠가 누군가 그의 저서에서 '환율은 권력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건 그가 정말 '공부에 손을 놓고 조직장악에 힘쓰던 재무부 조폭기질을 못버린 탓'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일단 '환율'이라는 것은 국제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율은 쉽게 이야기해 우리나라와 외국 간 거래를 가능하게 해주는 일종의 '상대가격' 같은 존재이다. 외환위기 이전의 우리나라나 현재의 중국처럼 환율에 대한 관리가 가능한, 즉 고정환율을 채택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가격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후생을 높이는데 핵심적인 지표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가격은 그저 우리가 거래를 하는데 있어서 활용하는 '지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거래량' 그 자체이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서 밥을 사먹으려고 하는 철수에게 '가격'이 중요한 것은 가격을 통해 밥을 몇그릇을 먹을지가 결정되기 때문이지 가격 자체가 그 자신으로 무언가를 달성해주는 성질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과연 돈이란 존재 자체도 우리가 그것으로 상품을 살 수 없게 된다면 그 순간 '휴지'의 역할 밖에는 못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런 상황을 다시 국제시장으로 돌려 이야기해보자. 앞에서 고정환율을 예외로 둔 것은 고정환율제도를 시행하는 경우, (수입규제 등으로)환율변동압력이 생기는 때에 환율조정 대신 수량조정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환율이 오를 것이라 예상되는 경우 한국은행(중앙은행)은 시중에 원화(자국통화)를 풀어 대응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원래 나타났을 환율변동 대신 수량조정이 발생한다. 이를 풀어쓰면 수입규제가 시행되면 단기적으로 우리의 무역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는데, 이것이 종국적으로는 환율조정을 통해 수입이 줄어든만큼 수출이 줄어들어 상쇄되는 효과를 한국은행이 환율방어를 통해 막는 것을 통해 나타나는 효과가 총생산의 증가인 것이다.

그런데 만수횽의 패착은 '우리가 환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생산량이 변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각하의 '그건 뭘 잘 모르는 니 생각입니다'의 단무지 석두 마인드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경제관료로 '법대출신'을 선호하시는 그분이 '신자유주의자'가 아닌 건 확실하다. 세상 어떤 신자유주의자가 경제 메커니즘도 모르나?

4. 정운찬 후보자 과연 현정부와 잘 맞을가?

정운찬 후보자는 케인즈학파이다. 그것도 앞서 밀턴 프리드만과 로버트 루카스가 '시카고발 피바람'을 완료하기 전에 학계에 입문한 정통파 케인즈학파이다.

이른바 '진보진영'이라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은 이런 까닭이다. 단지 '케인즈학파'라는 타이틀 때문이라면, 사실 그들의 관심은 경제학계 절반에 쏠리게 되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계에 있으면서도 시카고 학파는 물론 대다수 케인즈학파를 정조준하고 있는 조셉 스티글리츠의 저서에 추천사를 써도 '그이기에 가능한' 일로 치부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맹점이 있으니, 그의 '라인'과 '성향'이다. 그는 서울대 학사-프린스턴대 박사-콜롬비아대 조교수 거친 그야말로 앨리트였다. 물론 아무리 프린스턴이 하버드, MIT와 더불어 시카고에 대항하는 대표적 경제학 부문 명문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에 거기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게 정운찬 후보자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직관'이다. 전통적으로 '정통파 케인즈학파'들은 직관을 중시했다. 일반이론을 주장한 케인즈 뿐만 아니라 시장의 일반균형에서의 수요부족은 미시적으로 불완전경쟁시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조안 로빈슨 등의 주장만 봐도 그렇다.

이런 뿌리에서는 묘하게도(후보자 자신은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엘리트주의장의 채취가 느껴진다. 실제 케인즈학파가 주장하는 경제정책이란 결국 엘리트관료들에 의해 입안되는 것이고, 따라서 케인즈학파의 주장대로 움직이는 경제를 위해서는 이런 엘리트관료가 다른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여기에 이미 알려진대로 총장 재직시절 그의 행동들은 그의 성향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되어준다. 자신의 공약이기도 했던 김민수 교수에 대한 그의 처리, 학내의 6.15기념물의 처리 등은 그가 보수적인 성향에서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는 기자들조차 그의 장점 중 하나로 '한나라당으로 가건, 민주당으로 가건 어색하지 않은 사람'을 꼽고 있었다.
더불어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후보자의 스승인 조순 교수가 자신의 정치인생을 민주당에서 시작해서 한나라당에서 끝냈다는 점도 곱씹어 볼 만 하다.

5. 이 정부의 경제적 성향은 무엇인가?

정답은 '자기들도 모른다'이다. 성향같은 걸 정하는 것은 '실용'이라는 이 정부의 모토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일단 대운하를 비롯한 4대강 사업은 잘 알려져있듯 대규모 토목공사로 언뜻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연간의 TVA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 '녹색뉴딜'이라는 말이 들린다. 이거 과연 맞는 것인가?

일단 왜 '뉴딜'이 '뉴딜'인가?

말그대로 '새로운 계약'이라는 뜻이다. 계약은 쌍방간의 규율을 통해 일정한 내용을 하거나 하지 않도록 정하는 것이라고 할텐데, 과연 누구와 맺은 계약인가? 이 정책의 정식명칭은 '잊혀진 자들과의 새로운 계약'이었다. 여기서 잊혀진 자들이란 도시노동자, 농부, 상이용사 등 빈민층으로 전락한 이들을 가리킨다. 물론 케인즈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정책이기는 했지만, 정치적으로 볼 때 앞서 언급했듯 '구덩이 팠다가 구덩이 도로 메우는 삽질'이 이들 빈민층의 생활재건 프로젝트의 일부임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뉴딜에는 이런 토목공사 같은 것 뿐 아니라, 은행파산에 대비한 예금자 보호정책이나 고용안정책, 노동자재교육 같은 것들을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정부의 '녹색뉴딜'은 어떨까?

일단 토목공사 부문을 보건대, 이건 흡사 '비행기의식'을 치른다는 태평양 어느 부족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까닭인즉슨, 뉴딜이 시행되었던 30년대에는 20퍼센트를 넘기던 실업률로 고생했다는 점과 달리 우리는 비정규직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경기에 핵폭탄인 이유는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이유로 (혹은 보다 근본적으로 소득부족을 이유로) 소비성향이 높아지질 않는다는 점이다.

소비가 증가하지 않으면 총생산이 줄던가 수출에 의존해야 한다.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 우리 경제는 해외상황에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더불어 해외상황이 불안하다면 은행은 대출규모를 줄이고, 대기업은 투자를 줄일 수 밖에 없다. 백날 대통령이 관저로 불러서 '투자 좀 해주세요'라고 사정해봐야 소용이 없다. 투자프로젝트 한 번 실행했다간 자기는 물론 자기직원들 여기에 국가경제까지 휘청거릴 수 있는데, 함부로 나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걸 풀지 않은채, 단순히 토목공사에 의존하면서, 그것도 주로 콘크리트에 의존한 '개발에 의존한 근대적 개척'을 하면서 환경중심의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효과도 의심되고, 저의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환경을 생각해서라면 4대강사업은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는 정운찬 후보자의 발언은 실망스럽다.).

이런 것들은 현정부의 경제적 성향이 '케인즈주의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머뭇거리게 한다.

여기에 지금은 포기했다지만 꿈틀거리는 747과 감세에 대한 정부의 희망은 '공급경제학'을 따르고 있다. 더불어 공급경제학은 앞서 밝히지 않았지만, 시카고학파도 케인즈학파도 아니다. 사실 80년대 미국 연준위가 통화량 목표제를 포기한 이래, 시카고학파(루카스든 그 이후의 프레스캇이든)의 목소리가 미국의 관가에서 먹혀든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심지어 로버트 루카스가 80년대 후반 이후 경기변동에 대한 자신의 참신했던 이론은 제쳐둔 채 경제성장 연구에 몰두하는 것은 자신의 견해가 종국에는 '학문적으로도' 아무짝에도 쓸데 없었기 때문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덧 : 간만에 긴 글을 쓰게 됐다. 앞으로 언젠가는 봉인하겠지만, 모님의 의문에 대해선 부족하지만 답변이 되었길 기대해보면서...

by 현재시제 | 2009/09/14 13:16 | 濟界 | 트랙백 | 덧글(6)

강만수 모가지를 잘라야 하는가? 아니.

일단 전에 쓴 글 트랙백 : 만수횽과 환율문제

7월 환율과 관련해 외환시장에 정부가 본격적으로 개입을 시작했던 시기에 나는 현재의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다는 (바로 위의) 글을 쓴적이 있다. 물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가지를 자른다는 전제 하에.

자, 그럼 이번에는 말을 바꿔보자. 현재 정부의 경제정책(환율과 주가가 동오를 공략하러 적벽으로 나갔던 조조의 배들마냥 묶여 있으니 외환 부문만 얘기하는 건 부적절하겠지?)은 모든 부문에서 잘못 돌아가고 있다. 단 하나 강만수의 모가지를 자르지 않는 것만 빼고.

여기에서 오해할까봐 한마디 한다면, 여기서 강만수의 모가지를 자르지 않는다는 것과 그에게 실질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다. 즉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리를 교체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자리에서 강만수라는 사람이 정책에 있어 실권을 쥐도록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책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현재 상황의 급박함을 고려할 때, 임시조직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테스크포스 조직을 형성시키고 그 수장에게 (비공식적으로) 정책의 실권을 넘긴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염두해 둔 듯한 발언을 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적절한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덕수 전 총리도 나쁘진 않다.

그런데 왜 깔끔하게 기획재정부 장관을 갈아치우면 안된다고 하나? 청와대 말처럼 '위기에는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는 얘기나 하려고? 그게 아니다. 사실 정치적인 이유가 강하다. 우리나라 정부조직법 상 장관은 국회에서 청문회를 받아야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야당인사들이 장관의 흠집을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질이 의심되는 인사에 대한 검증이라는 측면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자세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그런 태도는 '경제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해 날아간 장관의 자리를 메꾸기 위한 인사에 대한 검증에서 그 인물의 신뢰를 다시 깎아먹는다니? 이건 자살행위이다. 더욱이 전방위적인 정책이 펼쳐지는 가운데 기획재정부 장관이 해야 할 역할은 (부총리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재정정책이고, 재정정책의 외부시차는 매우 짧다. 물론 국회의결 등 내부시차가 길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 필요한 '강력한 리더쉽'이란 곧 부처장의 의지나 직관에 의해 정책을 결정될 확률이 높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현재 국회의석 분포를 감안할 때 야당의 반대는 물리력으로도 잠재울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외부시차의 크기와 그에 따른 시장의 반응추이이다. 이 상황에서 또 다시 (검증으로) 신뢰를 잃은 인물을 재정정책 총괄책임자로 앉힌다면, 강만수를 식물장관으로 만들고 태스크포스를 통해 정책을 운용하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강만수를 식물장관으로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의 이력에 비추어 볼 때 자수성가형 인물이 지닌 '내가 지금까지 틀린 거 하나 없다' 식의 옹고집을 부릴 테세이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원론 교과서도 안읽었을 인간이 '경제대통령'이라고 우기는 걸 보면, 그에게 현실인식 자체가 있는 건지도 의문이고.

이래저래 답답하기만 하다.

by 현재시제 | 2008/10/30 02:15 | 濟界 | 트랙백 | 덧글(2)

최진기 동영상이란 걸 보니 웃음이 나오네 그랴


먼저 이거부터 링크하고 시작하자.

만수횽과 환율문제

일단 첫째 강만수 장관은 지식경제부 장관이 아니라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지식경제부는 따라서 재정정책과 관련된 업무와 관련이 없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덕분에 나는 이 강의를 듣는 내내 강사에 대한 신뢰성이 곤두박질 쳤다.

둘째 외환시장은 주식시장과 함께 효율적 시장가설이 가장 잘 성립하는 시장이다. 따라서 지적한대로 차익거래꾼들이 장난질을 해대는 통에 헛짓하면 돈까먹기 딱 좋다. 하지만 '기대'를 변화시키면 장기적으로 효과가 생길 수 있다. 또한 현재까지의 추이를 살펴보건대 지속적인 대량인출사태(bank-run)같은 좋지 못한 징조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모든 시장에서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거래를 하는데에는 두가지를 고려한다. 하나는 단기변동이고 다른 하나는 장기추세이다. 기획재정부의 최근 환율방어는 단기적 침체(차익거래에 따른 손실)를 각오하고서라도 장기적 추세(환율상승 심리 변화)를 반등을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남녀 간에도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통해 관계를 강화하고자 한다면 이벤트 횟수와 강도는 지수적 관계가 될 것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경제정책 또한 마찬가지이다. 즉 시장에 달러를 퍼부어 환율방어를 하는 고정환율제를 시행한다면 최진기 강사의 말처럼 달러만 쓰는 띠벙한 헛짓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환율제도를 자율변동환율제로 바꾸었다. 이는 시장에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적어도 내 기억에는 지난 10여년 간 인위적인 개입은 전무하다 시피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서프라이즈 파티'를 한 것이다.

강만수가 사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서프라이즈 파티'의 핵심인 '진심'을 담아내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 사람의 강의를 다 듣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강사는 학생들에게 '스테그플레이션이 오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바짝 엎드려서 그 바람이 지나가기만 기다려야 한다' 고 강의했을 것이다. 정부는 얼마 전이 되어서야 지금이 엎드려야 할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강풍에 강만수라는 60년대 케인지언적 경제관료가 날아가야 할 시기이다. 시장과 함부로 맞서는 것은 어리석다. 하지만 시장과 맞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면 그 때 필요한 것은 '장판파를 지키고 서있던 장비와 같은' 의지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내부의 적 강만수의 수급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단기적 침체 때문에 장기 추세를 방관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92년 유럽 외환위기 당시 영국과 핀란드는 '백기항복'을 했지만, 스웨덴은 극단적인 환율정책으로 끝끝내 살아남았다. 총알이 아까워서 전쟁을 못한다면 포로가 되어야 한다.

by 현재시제 | 2008/07/24 02:10 | 濟界 | 트랙백 | 덧글(26)

만수횽과 환율문제

사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의 유임여부에 대해 내 입장은 '잘라야 한다' 이다.

거시경제를 학문적으로 바라봄에 있어서 정책의 효과성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신뢰성'의 확보이다. 물론 과거에는 엘리트적 관료가 나서서 이런저런 간섭을 하며 사격훈련에서 영점을 맞추듯이 미세조정을 해서 경제를 최적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론이 나온 건 박통 각하가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라이방끼고 재건위를 만들었던 시절보다도 전이다. 한마디로 구닥다리라는 이야기.

'합리적 기대'라는 말에 나오는 '합리적' 이라는 말처럼 '신뢰'라는 말은 참 멋지다. 하지만 그런 표면적 이유보다 경제가 요동치는 상황에서는 '그분의 뜻'이 가는대로 이리저리 정책을 요리하는 것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신뢰성' 확보와 그를 위한 '굳은 의지'는 사실 실물부문보다는 통화부문에 유효적절한 이야기이다.

다소 어렵게 이야기한다면 장기적으로 실물부문과 통화부문은 괴리된다. 실물적 부문은 말 그대로 유형자산같은 물질적 부문이지만, 화폐라는 것은 그저 실물이 돌아가게 하는 베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을 풀면 물가가 변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돈이 돌아가는 속도는 정해져 있으니 외형적으로는 경제가 잘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강장관이 얼마동안 한국은행에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인하를 주문했던 것이 이런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금리를 내려버리면 돈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쓰는 게 좋으니 돈이 시중에 풀려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된다면 그렇지만 결국엔 실물경제가 좋아지지 않은 것을 깨달은 사람들의 생각 때문에 물가만 오르게 된다. 돈이 돌아가는 속도가 일정하고 경제수준도 고정되어 있다면 늘어난 유동성은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니 말이다(화폐수량방정식이라고도 하는 이 공식은 그러니까 돈이 도는 속도에 시중에 풀린 돈을 곱해보면 시장에 도는 물건들에 물건 가격을 곱한 것과 동일하다는 즉, MV=PQ라는 형태가 된다. 이걸 증가율 형태로 바꿔보면 - 수학적으로 이야기해 로그(log) 형태로 변환한다면- 증가된 화폐량 + 돈도는 속도의 변화 = 물가상승률 + 물건변화량인데, 돈도는 속도는 변함이 없고 물건도 변화가 없으니 결국 물가만 오르는 셈). 특히 이런 짓을 많이 하는 나라들, 예컨대 요새 문제되는 짐바브웨같은 나라들 같은 경우라면 돈만 찍으면 그게 바로바로 물가상승으로만 연결된다. 그런데 이러한 평균 물가상승률의 무지막지함(맨큐친구 로렌스 볼이나 데이비드 로머같은 아저씨들이 정책의 효과성을 가늠하는 지표)은 사실 자의적 정책집행(루카스-조지 루카스말고 밥 루카스- 친구 톰 사전트나 루카스 제자 에드 프레스캇이 강조하는) 탓이다. 한마디로 왔다갔다하는 통화정책으로는 죽어도 성공못한다는 이야기.

엄하게 재정부 이야기하는데 왜 통화정책이야기인가? 그것은 지금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높은 유가와 그에 따른 경기침체와 물가상승률 압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물가상승률은 짐바브웨같은 얼빵한 통화정책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 이는 유가가 올라 생산이 위축되고 그와 동시에 국내관련산업의 원가를 올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에 강력하게 일조한 것이 우리의 '만수사마'라는 점.

사실 강만수 장관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게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를 소비, 투자, 정부재정 그리고 수출과 수입으로 볼 때 소비심리가 바닥이기에 소비는 쉽게 늘지 않는다. 대통령께서 규제개혁 등을 언급해서 투자증가를 유도하고 계시지만, 투자는 그 비중이 너무 작다. 물론 큰 그림을 그릴 때 투자는 경제성장에 밑거름이 되지만 단기적으로 투자증가는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못한다. 정부부문을 늘리는 것은 정권교체의 의의를 갉아먹는 것이다. 결국 단기적으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수출부문을 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출경쟁력 확보가 필요하고 가장 좋은 경쟁력은 가격경쟁력, 즉 환율이다.'

이는 공공연한 발언을 통해 정권초기부터 원화약세를 불러온다. 하지만 강장관은 우리에게 있어 (나쁜 의미가 아닌) 큰 손인 미국의 소비심리 위축과 금융자본주의의 여파로 인한 지구적 경기침체라는 '불확실성이 큰 변수'를 놓쳐버렸다. 여기에 (경기침체가 불러온) 자산가격의 하락은 대체투자 대상으로 원유를 선택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상승추세의 원유가격의 상승을 더욱 부채질했다. 결국 우리의 주요수입품인 원유소비는 쉽게 줄 수 없는 상황에서 해외의 우리상품에 대한 수요는 줄었고, J곡선을 그리며 증가해 주길 바랬던 경상수지는 저점을 모르게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니 결국 원화약세를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그동안의 환율정책의 방향을 선회하기 위해 나설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재정부는 한국은행과의 공조를 통해 외환보유고를 풀어서라도 환율을 방어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 넷상에는 또다른 외환위기 그러니까 again 1997이 오는 것 아닌가라는 염려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외환보유고를 쌓아둔 이유는 이런 일, 즉 환율방어를 위한 총알로 삼기 위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그저께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2580억불이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 정도면 2007년 초 수준과 거의 유사하고 이는 2005년 박승 당시 한국은행 총재의 외환보유형태 다양화 발언에 부시까지 나섰던 시점보다도 훨씬 많은 것이다.). 더불어 현재와 당시의 경제 하부구조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은행의 부실정도나 기업의 부채비율, 금융의 정책당국과의 연관성(이른바 관치금융)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을 본다고 하면 당시와 지금은 천지 차이이다.

이를 이론적으로 풀어본다면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외환위기 시절의 극악무도한 '환율널뛰기'에 대한 경험은 다름 아닌 '기대환율'의 추이에 기인했었다. 먼저 우리나라의 이자율 수준은 외국의 이자율수준에 환율 변화를 곱한 것이다. 바꿔말하면 국내이자율 수준은 외국 이자율 수준과 환율수준 변화에 의존하는데 미래의 환율은 예상에 따라 결정되고, 이런 미래 환율에서 현재환율을 빼면 그것이 곧 환율 변화분이다. 따라서 현재환율과 이자율(금리)간에는 역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요며칠새 금리를 확인해보라.). 그런데 사람들이 외국에서 우리나라 환율의 상승을 예상하고 있고, 그러한 기대가 확실한 상태에서 외환당국(여기서는 외환보유를 하고 있는 한국은행)이 외화매각을 통해 국내환율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되버리면 국내 이자율은 하락하게 되면서 환율은 급격히 상승해버린다. 이것이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국내 경제사정은 환율의 기대를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사정은 그 당시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대환율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환율정책은 성공할 것이다. 즉 그것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정책당국의 의지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인가이다. 앞서 강만수 장관 취임 초기 원화약세의 시작을 기억해 보자. 당시에는 환율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 것 역시 기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금리와 환율의 음의 상관관계 그리고 현 정부초기 강장관의 금리하락 압박을 상기 시켜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현재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신호는 확실하다. 하루동안 50억 달러를 털어넣었고 실제 환율은 1000원 초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의지'가 '기대에 쐐기'를 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정책 책임자를 갈아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80년대 초반 미국의 물가상승억제 정책을 주도했던 폴 볼커 당시 미 연준위 의장의 명성은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그는 70년대에 미국을 괴롭히던 물가상승률을 박살내는데 있어서 취임 직후부터 공공연하게 자신의 의지를 확인시켰고, 그의 생각은 결국 시장에 관철되었다. 그런 면에 있어 현정부 초기 '성장드라이브'의 상징이었던 강장관은 '기대'에 관한한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것이 강만수 장관이 현재 위치에서 사퇴해야 하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정부의 환율개입을 질타하는 말이 들린다. 나는 그들이 외환시장에 존재하는 '기대'를 '정태적 기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단기간에 경제에 경직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케인즈 학파들조차도 외환시장에서 형성되는 기대가 합리적이라는데에는 이론이 없는 듯하다(실제로 이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루드 돈부쉬는 케인즈학파로 분류되지만, 그가 형성한 외환시장에 대한 모형에서 환율에 대한 기대는 합리적 기대였다). 기대가 합리적인 이유는 그것이 정보를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즉, '합리적 기대'하에서의 정책이라면 합리성에 걸맞는 일관성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강만수 장관의 유임을 비판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냥' 정부가 싫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환율하락이 실제로 달성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이 스테그플레이션에 가까우니 환율의 조정으로 물가가 안정된다면 나타날 경기침체를 비판하는 쪽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by 현재시제 | 2008/07/10 03:17 | 濟界 | 트랙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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