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26일
공급측 경제학의 생존신고
과연 저 말이 비웃음에 뭍힐 뻘소리일까?
그런데 그게 아니다. 놀랍지만 그렇다.
다음을 보자.
1970년대에 세계 경제는 실업증가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관찰되는 스태그플레이션 및 생산성 정체에 직면했다. 특히 미국 경제는 과도한 사회복지비 지출로 조세부담이 늘어나고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전반적으로 생산성이 저하되었다. 케인즈적 총수요관리정책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공급경제학이 등장하였다.
공급경제학은 자본주의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 공급측면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불합리한 세제와 높은 한계세율이 근로자의 근로의욕과 저축의욕 및 자본가의 투자의욕을 저하시켜 생산성 향상을 둔화시켰다고 보았다. 따라서 세율을 인하하고 불합리한 조세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경제 전체의 생산능력을 확대시켜 물가안정과 고용증대라는 두 가지 거시경제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중략)
레이건 시대를 거치며 공급경제학의 아이디어는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공급경제학의 아이디어는 장기적 경제성장문제를 다루는 내생적 성장이론에 의해 일부 계승되었다. 즉, 공급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세율인하정책은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강조하는 인적자본과 실물자본의 수익률에 영향을 미쳐, 단기적인 경기부양효과뿐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효과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대두되었다.
정운찬-김영식, 2005, "거시경제론", p.595~596, 율곡출판사
위에 나왔듯 공급경제학은 사실 '생산성' 에 대해 접근을 한 이론이었다. 만약 성장을 '생산성변화로 촉발되는 경제수준의 향상'이라고 정의한다면(현대경제학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생각을 한다.), 이는 성장의 문제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장기적인 문제였기에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재정적자나 국제수지적자와는 별개였을 수도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이론은 꽤나 힘을 얻었었고, 그 시기의 호황을 위의 메카니즘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물론 그들은 최근의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의 감독부실, 지나친 저금리정책, 법률에 의한 비우량계층에 대한 주택대출 확대 등의 정부실패가 그 원인이라고 진단할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공급측 경제학이 '부두경제학'이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에게 해야 할 것은 반박이지, 조롱이 아니다. 분명하게도 아직까지 그들은 경제학계에서 일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Arthur Laffer가 아니라 Martin Feldstein과 Robert Barro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 by | 2009/06/26 10:07 | 濟界 | 트랙백 | 덧글(11)
2008년 11월 03일
미국 공화당은 해롭고 민주당은 이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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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 대한 댓글을 쓸까하다가 길어져 새로운 글을 쓰게 된다.
일단 윗 글의 가장 큰 문제는 주제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원글은 재정적자나 정부부채가 아닌 주식시장에 관한 글이다. 자산시장의 일부인 주식시장을 이야기하는데, 정부지출을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동일선상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다른 쪽으로 말해 재정적자 축소 정책을 주식시장과 연결해보면, 재정적자 축소란 정부지출을 줄이거나 증세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소비의 원천인 자산을 축소시킴을 말하는 것이다. 자산의 중요요소 중에 하나가 바로 주식이다. 주가가 주식의 가치를 모두 합한 것으로 할인한 것이라고 한다면, 위의 말은 결국 (인과관계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면) 민주당 집권기에 주가는 (약하게나마)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레이거노믹스의 패착은 그가 했던 최초의 약속인 '세금을 줄이고 정부지출을 줄이겠다.'를 지키지 않았다는 게 아닐까? 정부지출 중 가장 큰 부문이 군사비 지출입니다. 레이건은 스타워즈 프로젝트, 아버지 부시는 걸프전, 아들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했다. 정부지출이 줄리가 없다. 물론 (맨큐를 포함한) 상당수 경제학자는 최적세율을 초과해 조세를 부과한 경우 세율을 낮추면 세입이 늘 수도 있다는 아서 래퍼의 주장에 대해 최적세율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비판을 가한다. 하지만 적어도 소비를 증가시킬 수 있는 요인(즉 가처분소득과 그의 현재가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감세와 더불어 함께 진행하는 정부지출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밀턴 프리드만의 지적처럼 그저 정부정책이 '화려한 약속'에 지나지 않을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또 다른 쪽으로 비틀어보자. 레이거노믹스는 '악마의 제국' 소비에트 연방과의 군비경쟁을 통해, 그들의 경제상황을 거덜냈고 이것이 개혁, 개방노선을 추진하는 요인으로 만들어 '냉전'이라는 경제의 불확실성을 사라지게 했다는 점이다. 아버지 부시의 경우 힘의 우위를 통해 중동지역의 패권을 확보했다(적어도 얼마간은 그런듯 보이도록 했다.).
이러한 정치적 사건이 맺은 경제적 열매를 따먹은 것이 클린턴이었다고 한다면? 얘기는 또 이상하게 되버린다.
사실 진정으로 이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원문(맨큐 교수의 글)은 공화당을 옹호하며 (친 민주당 매체인) 뉴욕타임즈를 엿먹이려고 씌여진 것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공화-민주의 대결구도에서 이상한 통계자료를 통해 권위를 획득해 지지를 끌어내고자 하는 태도를 경계하려는 것이다. 통계에는 언제나 '제 3의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한 결과물은 양자 사이에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 만을 보여줄 뿐이다(이러한 역설을 이야기한 것이 원문에 추가로 달린 박사과정 학생의 설명이다).
사실 민주당 지지의 정치적 매력이라면 필자인 맨큐 교수도 별도의 포스트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엉터리 자료로 이상한 주장을 한다면 '정치적 매력'도 깎일지 모른다. 무식하고 직선적인 것은 공화당에나 어울린다고 놀리는 것은 민주당원들이 아니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주당이 집권하든, 공화당이 집권하든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거기서 거기이다. 민주당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할지는 모르겠지만, FTA는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다. (버락 오바마 후보가 공공연히 FTA가 자국에 불공정하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이번엔 쇠고기 뿐 아니라 자동차 시장도 넘볼 것이다. 민주당은 미국민을 위한 정당일 뿐이다. 그들은 공화당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미국기업들에게 무지막지한 정치자금을 받고 있다.
노무현에게 품었던, 문국현에게 품었던 희망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거두었듯, 미국 민주당에 대한 시각에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 by | 2008/11/03 11:30 | 濟界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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